[정치읽기] 누가 즉흥적인가, 그들인가 우리인가

최초입력 2017-09-04 16:16:54
최종수정 2018-04-30 16:59:53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준비했나
강력 응징" "당당한 대응" 즉흥적이고 공허


#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는 충동적이다. 그래서 당혹스럽다.' 정부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종잡을 수 없는 지도자라서 예측이 어렵고 대응이 난감하다는 거다. 중요한 외교적 입장을 툭하면 '트윗질'하거나, 들과 산, 비행장을 가리지 않고 미사일을 세워 쏘아대고 대놓고 핵실험을 벌이는 행태가 충동의 '증거'다. 이런 지도자를 상대하는 우리 '리더들'의 난감함엔 '어린애', '장사꾼' 같은 폄하와 비아냥도 깔린 듯하다. 그런데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과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정말 내키는 대로 하는 인물일까.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사진=연합뉴스]
# 북한은 1950년대에 과학자들을 소련의 핵 연구소에 보냈고, 이어 원자력연구소도 세웠다. 핵 보유를 목표로 정한 뒤엔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을 몰래 쌓아 왔다. 그러다가 들키면서 불거진 게 1994년 북핵 위기다. 위기를 풀자며 6자회담이 꾸려져 1년에 한 번꼴로 열렸지만 지지부진했고, 그사이 북한은 1차 핵실험을 한다. 김정은 집권 뒤엔 흐름에 가속도가 붙었다. 2013년엔 3차 핵실험이었고 꾸준히 규모를 키워 지난 3일엔 수소폭탄급인 6차 핵실험에 이르렀다.

1970·1980년대 남한 공격용 단거리미사일을 구축한 북한은 1990년대 초엔 일본을 타격할 수준에 이른다. 1998년 대포동 1호 이후 장거리미사일에 열을 올렸다. 많은 실패를 기록한 김정일 집권기를 거쳐 김정은 집권기에 접어들어 미사일 개발이 급성장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등이 그 결과다. 핵과 미사일에 관한 한 북한은 집요했고, 김정은은 '계승'하고 있다.

# 트럼프 대통령이 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대놓고 말했다. 안보에선 공조라더니 경제에선 뒤통수를 쳤다, 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행태다 등의 논평이 쏟아졌다. 작년 미국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은 툭하면 FTA를 걸고 넘어졌고, 한국을 꼭 집어 거론하곤 했다. "한미 FTA는 미국의 일자리를 죽이고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최악의 협정이다"라는 식이다. 6월 말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FTA에 대한 불만을 기습적으로 제기했다. 2일만 해도 수해지역 현장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상당히 (FTA 폐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FTA에 대한 적대감이자 문제의식이다.

# 핵·미사일 위협은 김정은 집권 이후 더욱 명확해졌고 일관됐다. 올해 초만 해도 김정은 스스로 ICBM 완성을 예고했다. 그의 집권은 올해로 5년 차에 들어섰다. FTA를 적대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2011년부터 미 언론에 등장했다. 대선후보로 거론된 이후에는 일관되게 한국을 문제 삼았고 집권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돌이켜보니 그들은 즉흥적이지 않았다. 거친 듯하지만 집요한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폄하와 비아냥에 눈이 가려, '설마'라는 생각에 빠져 그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제대로 못 봤으니 맨날 당혹스럽다. 정부가 내놓은 "강력 응징" "당당한 대응"이란 말이 오히려 즉흥적으로 들린다. 그래서 이 상황이 더 무섭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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