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읽기] `적폐청산 1호`였던 검찰의 반전

최초입력 2017-11-19 17:37:23
최종수정 2018-04-30 16:56:42
검찰이 적폐청산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적극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검찰이 적폐청산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적극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연합뉴스]
검찰이 파죽지세로 적폐청산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박근혜정부 국가정보원장 2명을 구속했고,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에서 국방부 장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역임한 김관진 전 실장도 구속돼 포승줄에 묶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검찰의 칼날은 전 정권만 겨누고 있진 않다. 검찰은 20일 문재인정부 초대 정무수석을 지낸 전병헌 전 수석을 뇌물수수 혐의로 소환할 방침이다.
검찰의 이 같은 전방위 수사에도 청와대와 여권에선 외견상으론 "검찰에 계속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적폐청산 수사를 주도하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신뢰도 여전히 단단하다.

하지만 청와대의 속내는 복잡하다. 우선 적폐청산 수사가 장기화하면서 '검찰개혁론'에 갈수록 힘이 빠지는 분위기다. 정권과 코드를 맞춰 맹렬한 기세로 전 정권 실세들을 줄줄이 잡아넣고 있는 검찰을 향해 "너희도 적폐"라고 얘기하긴 힘들다. 또 이런 수사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결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관진 전 실장처럼 보수의 상징성이 큰 인사가 포승줄에 묶인 장면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청와대와 여권의 보다 근본적인 고민은 이번 검찰 수사가 기존 회색지대에 머물던 문제들을 흑(黑)과 백(白)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데 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문제가 대표적이다. 사용처를 밝힐 수 없고, 정규 예산으로 편성할 수도 없지만 '중요한 어딘가'에 써야 할 돈은 어떤 정권에든 필요하다. 특활비라는 게 그런 돈을 융통할 수 있는 정부 내 우회 경로다. 검찰은 이걸 문제 삼아 전 정권 실세들을 감옥에 넣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착복한 경우는 단죄해야겠지만.

문재인정부 출범 초 불거진 법무부와 검찰의 돈봉투 회식 사건 역시 관행으로 여겨지던 사안에 법의 잣대를 들이댄 경우다. 세상은 점점 투명해지겠지만 정권 실세들은 앞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직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검찰이 한번 잡아넣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문재인정부 사람들도 잘 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보좌관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1년 7월 검찰로부터 불구속기소를 당했다. 임 실장의 선임보좌관이 삼화저축은행에서 1억여 원을 받았는데, 이 자금이 임 실장에게도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게 당시 검찰의 판단이었다. 임 실장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고, 치열한 재판 끝에 2014년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사이 임 실장은 당 요직이던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2012년 총선 출마도 포기했다. 당시 당 상임고문이던 문 대통령도 임 실장의 사무총장 사퇴와 총선 불출마를 요구했다.

검찰의 이번 적폐청산 수사로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수사 포토라인에 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검찰이 언젠가 현 정권 실세들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일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번 적폐청산 수사로 검찰이 앞으로 "이건 감옥 갈 죄"라고 들이댈 수 있는 불법의 범위는 훨씬 넓어졌다.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으로 수세에 몰려 있는 한 대기업 그룹이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캠프의 실세로 통했던 A씨에게 접촉해 비공식 자문역을 맡겼다. 이 인사는 현재 이 기업의 자금 조달을 돕고 있다. A씨는 해당 기업의 자금 조달과 관련해 금융권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 청와대 인사와 전화를 하는 장면도 보여줬다고 한다. 기자에게 이 일을 전해준 인사는 "A씨가 문재인정부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느냐"고 궁금해하며 물었다. 지금은 '이게 문젯거리가 되나' 하는 이런 일들이 정권 후반부로 가면 하나둘씩 곪아 터질 수도 있다.

청와대 사람들은 "검찰 적폐청산 수사를 청와대가 절대 컨트롤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수사 결과 등을 법무부 장관 등을 통해 보고받는 게 전부라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청와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 검찰은 적폐청산 수사로 문재인정부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와 여권은 검찰의 힘을 줄일 거의 유일한 방안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을 내세우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려먼 자유한국당 찬성이 필수적인데, 법사위 소속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선 여전히 반대 기류가 압도적이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적폐 1호'로 지목한 검찰이 영리하게 적폐청산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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