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장관 통화가 ‘전술` 워싱턴출장이 ‘전략`...우리 외교 현실

[레이더P] 한반도 운전자론이 공허한 이유

최초입력 2017-10-12 15:33:32
최종수정 2017-10-12 17: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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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빠졌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의 직접적 당사자인 우리 정부는 전략과 전술없이 주먹구구식 대응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한반도 상황이 백척간두에 놓여있지만 외교부는 아직까지도 미국 장관과 전화통화를 '전술'로 워싱턴 출장을 '전략'이라 생각한다"면서 "국회와 국민, 언론의 질타에 하루살이같은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해온 '한반도 운전자론'이 공허하게 들리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외교 부재' 현실이 열악한 외교인프라에서 비롯된 예고된 참사라는게 공통된 분석이다. 민간 인사로 외교부 2차관을 역임했던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외교부가 '인력 박막화·절벽 현상'을 겪고 있다"며 "주요 부서라 할 수 있는 북미·북핵국을 제외한 부처의 외교관들은 닥치는 대로 현업을 맡아 처리하기도 버거운 실정"이라 말했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이 9월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이 9월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외교부에 따르면 냉전 종식 후 1994년을 기점으로 지난 2015년까지 우리의 무역액은 3.8배(1983억달러→9633억달러) 증가했고, 해외 여행자수는 5.1배(315만명→1931만명) 늘어났다. 또한 한국의 대외경제의존도는 2014년 국민총소득(GNI) 기준으로 99.5%,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5.6%에 달해 세계 최상위권이다

이와 같은 인적·물적 교류 확대와 함께 국제사회에서 요구하는 한국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외교부는 폭증한 외교수요 대응을 위해 '조직'은 확대했으나, 그에 상응하는 외교 인력 충원과 육성에는 미진했다.

외교부 인력은 1994년 1903명에서 2015년 2222명으로 늘어나 지난 20년간 16.8% 증가하는데 그쳤다. 같은 시점에 외교부 본부과의 숫자는 약 30%(54과→69과) 증가되었으나 인력 증가분이 이에 부응하지 못해 본부 과당 인력은 30% 감소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중·한일 관계를 담당하는 동북아국은 인력 절벽 현상을 겪었다. 중국과 일본 업무를 담당했던 과장급 차석 서기관이 청와대로 파견됐고 한일 위안부 합의 테스크포스(TF) 업무까지 겹쳐 한동안 인력 충원 없이 국장·심의관·과장의·밤샘 근무가 이어졌다.

김 원장은 "외교부 과장 아래 차석 서기관을 제외하고 업무가 가능한 실무자가 사실상 부처에 없다"며 "연수와 해외공관 근무를 마친 갓 서기관과 사무관이 여러 국가 업무를 한꺼번에 맡는 경우가 있다. 지금 인원으로 외교 전략과 전술을 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한 전직 대사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농업적 근면성만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요구하는 창의적 외교는 이런 상황에서 나올 수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민간 인사로 2013년부터 3년간 외교부 정책기획관(국장급)을 역임했던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3년간 외교부에 있으면서 과로로 병가를 내는 직원을 여럿 봤다. 외교부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알고 있지만 막상 안에 들어오면 생각이 달라진다"고 했다.

외교부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혁신로드맵에 중장기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견국의 절반 수준인 2200여명으로 인력을 늘리고 정부 예산 대비 0.8%에 불과한 외교부 예산비중도 확대시킨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런 외교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올해 초 대만 택시기사 성폭행 사건과 작년 멕시코에서 구금당한 한국 여성의 영사 조력 문제 등 허술한 외교부의 대응을 질타하는 교민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예산 편성권이 있는 국회도 미온적이다.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야당 중진 의원은 "아픈 환부를 들어내고 뼈를 깎는 노력이 고통이 개혁인데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외통위 소속 여당 중진 의원도 "외교부가 이정도 혁신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도 "혁신안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외교 인프라 확충에 있어 외교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실력 유무와 상관없이 외무고시만 통과하면 공관장을 맡을 수 있는 원통형 인력구조의 개혁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자기 목을 내놓고 싸우는 외교관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며 "사고만 치지 않으면 본부 국장은 못해도 공관장은 할 수 있는 인력 시스템에 유능한 외교관이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안병준 기자 /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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