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과 실무급 사이…이야기와 협상 사이

[레이더P] 급물살 남북대화 추진

최초입력 2018-01-03 17:46:56
최종수정 2018-01-03 17: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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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표단을 보낼 뜻을 밝히며 "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 있다"고 말한 이후 대화 제안과 긍정적 반응이 하루 간격으로 휴전선을 넘나들고 있다.

북한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3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3일 오후 3시 30분(평양시 오후 3시)부터 판문점 연락 채널을 다시 개통하겠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 측 입장을 발표하는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의 모습.[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북한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3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3일 오후 3시 30분(평양시 오후 3시)부터 판문점 연락 채널을 다시 개통하겠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 측 입장을 발표하는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의 모습.[사진=연합뉴스]
3일 북측이 판문점 남북 연락채널을 1년11개월 만에 재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정초부터 한반도가 해빙 국면에 접어드는 모양새다. 그러나 미국·일본 등 주변국들은 한 손에는 핵단추, 다른 한 손에는 대화를 든 북측의 이중 플레이에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남북대화와 관련해 남과 북, 미국과 일본 등 관련국들이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어 긴밀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북측의 의도를 파악하고 향후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일단 북측은 이날 최고지도자의 의지를 담아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단절됐던 판문점 연락채널을 재개하는 분명한 긍정적 메시지를 던졌다. 또 북측은 평창올림픽 참가를 전제로 한 제반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접촉을 제안해 전날 남측의 대화 제의에 일정 부분 호응했다.

그러나 2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고위급 남북회담을 열어 북측의 평창올림픽 참가 문제와 함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상호 관심사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자"고 제안한 것에 대해서는 속도조절에 나서는 자세를 취했다. 북측은 일단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관련한 실무적 문제를 논의하자"며 대화 의제를 '평창'으로 한정했다. 또 정부가 제시한 고위급 회담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정부가 '위로부터의'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데 대해 북측이 '아래로부터의' 사실상 실무접촉으로 화답한 것은 장기간 남북대화가 단절됐던 점과 미국 측과의 불편한 현 상황 등을 감안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직접 신년사에서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언급하며 의지를 보인 만큼 북측 대남 실무진에서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를 보여야 하는 부담이 지워진 만큼 처음부터 무리하게 회담의 판을 키우지 않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이와 관련해 고위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현재 미국과의 대립 상황 등을 감안해 일단 대화의 범위를 평창올림픽 관련 내용으로 좁히고 실무적인 차원에서 접근해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9일까지 아직 시간이 있고 오늘 판문점 연락채널이 열려 안정적 소통창구가 생긴 만큼 (대화 의제나 회담 대표의 격 등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북측과 조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북측이 평창 중심 실무접촉을 제안한 것에 대해서는 현 상황에서 고려할 만한 선택지라는 의견도 나왔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한국으로서도 전략적으로 평창올림픽때까지는 올림픽 관련 의제만 유리한 측면이 있다"면서 "예술단이나 응원단 파견은 가능하며 이산가족 상봉 등은 당장 하기가 시간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북측이 이날 자신들의 '정부'에 해당하는 국무위원회 산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리선권 위원장을 대남 제안 발표자로 내세운 것도 눈에 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조평통 위원장을 통해 대남 입장을 밝힌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통일부를 지정해 남북대화 후속 조치를 지시한 것과 대응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 교수는 "그동안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이 성명을 발표했을 때 북측에서는 대부분 조평통 대변인 명의 성명이 나왔는데 조평통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낸 사례는 처음"이라며 "북측이 우리 조치에 대해 환영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북측이 고위급 대화보다는 실무 차원의 접촉에 무게를 실으면서 2년 만의 남북대화 수석대표의 격은 다소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당초 장관급 이상의 고위급이 만나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열겠다는 의도를 가졌다. 그러나 수석대표의 격이나 의제 등에 대해서는 정부도 어느 정도 열어놓고 조율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평창올림픽 관련 부처인 통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와 기타 유관 기관의 실·국장급 인사들로 대표단이 구성될 공산이 크다.

남북대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앞으로 한미 간 보폭 맞추기도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외교 관계자는 "미국은 평창올림픽 같은 축제를 앞두고 북한과 대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미국은 평창올림픽 이후 한국이 북한과 이야기(talking)를 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협상(negotiation)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이 북한과 미국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면서 핵문제와 관련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남북) 두 나라가 대화를 원한다고 결정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선택을 존중하겠지만, 미국이 나서서 북한과의 대화를 환영하거나 촉구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미국은 북한의 대화 제의 의도를 순수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나워트 대변인은 "우리는 대화하는 데 있어서 김정은의 진정성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라며 "김정은은 미국과 한국 두 나라 사이에 어떤 이간질을 하려고 할지 모른다"고 했다.

미국이 북한의 유화 제스처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한미 간 동맹의 균열을 책동하는 것 아니면 대북제재의 끈을 느슨하게 해 핵·미사일 개발을 완성하기 위한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의도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새해 첫 업무 브리핑에서 "한국과 미국은 일치된 대북 대응을 위해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다"며 "양국은 궁극적인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한미 간 균열 책동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샌더스 대변인은 또 "미국의 대북정책은 변함이 없다"며 "북한의 변화를 위해 최대의 대북 압박을 가할 것이며 반드시 한반도를 비핵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대화 제의가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과 자산을 벌겠다는 의도라면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은 북한이 일시적으로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핵·미사일 완성이라는 최종 목표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기류는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의 기자회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어떤 대화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핵 포기 없이 만나서 웃고 사진 찍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새해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백악관, 국무부, 유엔대사 등이 북한 신년사에 대해 일제히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낸 것은 단순히 북한을 향한 경고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에 대한 우려도 담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북제재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대화 또는 교류를 희망해 왔던 한국 정부가 자칫 동맹 간 '엇박자'를 만들고 대북 압박의 끈을 느슨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안전한 올림픽 개최라는 단기적인 목표에 치중하느라 한반도 비핵화라는 궁극적이고 장기적인 목표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대북 강경론도 여전히 존재한다. 대표적인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경우 미국 선수단이 불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존 볼턴 전 유엔대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군사옵션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한편 미국 NBC와 CBS 방송은 미국 고위 당국자 발언을 인용해 북한이 미사일을 추가 발사하는 도발 징후가 있다고 보도했다. NBC는 북한이 주말 또는 다음주 초에 올해 첫 탄도미사일 발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진명 기자/김성훈 기자/강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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