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서울에 대한 `간단` 상식① 덕수궁

최초입력 2018-01-04 14:13:00
최종수정 2018-01-11 13:43:39
'이제 서울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서울 구로구을)이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지난 11월 '박영선, 서울을 걷다'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른바 똑똑한 영선씨가 들려주는 서울 이야기다.

첫번째는 한국의 대표 상징물인 '궁(宮)'이 대상이다. 덕수궁에서 시작한 여정은 정동길, 성균관, 창덕궁, 경복궁, 삼청동으로 이어진다. 서울 투어를 통해 시민들과 함께 서울 속의 삶과 역사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향후 박 의원은 시장상인을 만나고 노동현장 찾아 서울시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겠다는 복안이다.

레이더P는 그 속에서 우리가 미쳐 몰랐던 서울에 대한 상식을 발췌해 소개한다.





박영선> 그럼 이자리에서 보면 서울 100년 역사가 다 여기에 서려있는 겁니까?

안창모> 아, 그렇죠. 간단하게 설명 드리면, 저희 앞에 보이는 바로 저곳이 1897년에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출범한 덕수궁이 위치한 곳이고요. 덕수궁이 출발할 때 만들어진 길이 두 개가 있습니다. 저는 통상 대한제국의 길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린 지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길이 태평로죠. 지금은 세종로라고 불립니다만, 덕수궁 앞에서 광화문 네거리까지 잇는 이 길은 조선시대엔 없던 길입니다. 조선시대엔 없었는데 대한제국이 출범하면서 '황제가 이쪽으로 왔는데 당시 정부의 행정부처라고 할 수 있는 육조는 광화문 광장 주변에 여전히 놓여있었죠. 그래서 왕과 신하가 소통하기 위해서 새로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만들어진 길이 현재의 세종로가 됩니다.

박> 그럼 조선시대엔 이 길이 없었고 고종황제가 덕수궁으로 이사하면서 태평로가 만들어진거고 조선시대의 중심은 저 광화문 광장이었다?

안> 네, 그리고 뒤로 보시면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알고있는 소공로가 있죠. 사실 소공로는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엔 없던 길입니다. 소공로 옆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이 있었던 곳이죠.

박> 아, 여기 조선호텔 뒤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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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예, 지금 저기 뒤쪽에 환구단 정문이 보이고 저 끝에 지붕이 조금 보입니다만, 저기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인데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황제가 되었다는 의미인거죠. 그래서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이 공간이 드라마틱하게 변하게 되는데, 그래서 바로 이 공간이 대한제국의 출발점이자 근대 한국의 가장 중심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겁니다.

박> 그럼 다시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볼까요?

안> 이동하시죠.

박> 네, 근데 제가 항상 이제 이 태평로를 지나면서 생각하는게, 왠지 저 덕수궁 돌담길이 저는 좀 답답해보이고, 뭔가 마음에 거슬렸었거든요. 근데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저 돌담길, 저 길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과거에 덕수궁 돌담은 여기(시청 앞 광장)를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졌네요.

안> 맞습니다. 조금 걸었는데 이미 지금은 덕수궁 안으로 들어온 셈이죠.

박> 아 그렇군요.

안> 저 담장이 원래는 이쪽 바깥에 있었고 우리는 덕수궁 안을 거닐어야 하는데 지금 덕수궁 바깥을 거닐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1912년에 이 도로가 직선화되면서 궁녘(?)의 일부가 잘려 나간 거 거든요. 일제강점기 뿐만 아니라 1968년에 서울에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저 궁녘이 뒤로 물러났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서 한 번은 일제강점기, 한 번은 해방 후에 이 궁이 잘려나가면서 궁장, 궁의 담장은 새롭게 만들어 진거죠.

[정리=김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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