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커] 과거 北이 내걸었던 `비핵화의 5가지 조건`

최초입력 2018-02-14 16:00:44
최종수정 2018-04-30 16:11:07
Q: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가 물꼬를 튼 가운데 미국 백악관은 한반도의 비핵화는 타협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대화를 위해 마주 앉을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는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지난 1월 30일 취임 후 첫 연두교서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최대의 압박과 제재를 가하겠다고 선언했고 같은 달 26일 다보스포럼 폐막 연설에서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북한이 내걸었던 비핵화의 조건은 무엇이었나요?

북한 조선중앙TV는 1월 13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국가과학원 현지 시찰 사진을 내보내면서 사진 속 핵 관련 정보가 적힌 것으로 추정되는 도판을 흐릿하게 처리했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북한 조선중앙TV는 1월 13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국가과학원 현지 시찰 사진을 내보내면서 사진 속 핵 관련 정보가 적힌 것으로 추정되는 도판을 흐릿하게 처리했다.[사진=연합뉴스]


A: 북한이 제시했던 비핵화의 여러 조건 가운데 현재까지 유효한 것도 있는 반면 흐지부지 끝나버린 것도 있습니다.

첫째 조건은 에너지 수요 충족을 위한 경수로 제공이었습니다. 1994년 제네바 회담에서 북한은 핵 개발을 동결하면서 1000㎽급 경수로 2기를 제공하고 연간 중유 50만t을 제공받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그 대가로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완전 복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허용, 핵 활동의 전면 동결 및 기존 핵시설의 궁극적인 해체를 약속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국제사회가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경수로를 제공한다면 국내 원자로를 경수로로 대체함으로써 원자력 프로그램 전체를 수정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기술 수준으로는 경수로를 자체 개발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 논의 자체가 흐지부지됐습니다. 코리안 엔드게임의 저자 셀리그 해리슨은 "미국이 1994년 10월 제네바에서 맺은 핵동결 합의의 핵심 조항들을 존중하는 데 늑장을 부렸다"고 적었습니다. 당시 제네바 합의를 통해 목표로 한 완공 시점은 2003년이었지만 합의 이행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북한은 IAEA 핵사찰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둘째 조건은 한미 간 연합 군사훈련(팀스피리트)을 없애고 점진적으로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역시 급격한 '주한미군 철수'에 남한의 반발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군 지상군을 남쪽(부산~진해선)으로 철수하고 이후 미 지상군·핵무기 한반도 철수, 미 해·공군 한반도 철수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일례로 1992년 북한은 영변 핵시설 외부 시찰을 허용하는 대신 남한은 팀스피리트 훈련을 일시적으로 취소하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그해 12월 조인된 남북기본합의문을 통해 '남북한은 핵무기를 실험·제조·생산·도입·처리·저장·배치 그리고 사용하지 않고 핵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도 보유하지 않는다'고 약속했습니다.

또 북한은 남북한이 각기 병력을 절반으로 감축하는 데 합의할 경우 여기에 맞춰 미군 병력도 절반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91년 5월 당시 한시해 유엔 대표부 대사는 "미군과 남한 군이 재배치된다면 우리 병력도 재배치될 것"이라며 "상호 협정에 기초해 재조정할 채비가 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셋째 조건은 남한의 재래식 군사력 및 군비 감축이었습니다. 북한은 미군 철수뿐만 아니라 남북한 병력 감축의 연계 문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1987·1990년 제안한 군비통제안에 따르면 남북한 병력을 서로 감축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첫 단계로 남북한이 병력을 40만명으로 감축하고 이후 25만명, 10만명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1990년 9월 남북 총리 회담에서도 '전방배치 공격형 전력을 후방 지역으로 철수할 것' '기습 공격과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해 이들 전력을 감축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쌍방 병력 후퇴에서 주요 논란거리는 비대칭성의 원칙입니다. 서울이 비무장지대에 더 근접해 있기 때문에 거리상 동일한 후퇴를 할 경우 남한과 미군이 불리한 입장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1994년 6월 북한 김일성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당시 "서울의 지리적 위치의 현실을 감안해 우리 쪽이 남한 쪽보다 더 멀리 후퇴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에서도 비무장지대 양쪽의 모든 중무기를 50% 감축하자는 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고려된 바 있습니다.

넷째 조건은 미국의 핵우산 철폐입니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선행 조건으로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철폐할 것을 촉구해왔습니다. 일례로 지난 1990년 8월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 협정을 준수하는 대가로 북한에 대한 핵무기 위협 배제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협정을 제안한 바 있기 때문이다. 1993년 북한은 미국이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보장한다는 원칙을 받아들인 후에야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유보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제네바합의 3조 1항에도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이 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시한 바 있습니다.

다섯째,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국의 균형적이고 중립적인 역할입니다. 1998년 6월 16일 북한은 공식 제안을 통해 미사일 개발 중지 문제를 한국전쟁의 공식 종식과 미국 군사적 위협 제거와 함께 논의할 준비가 돼 있음을 분명히 한 바 있습니다. 미국이 북침이나 남침을 억제하는 균형자로서 광범위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 것으로 읽힙니다.

이후 미국·남북 간 3자 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핵을 보유한 중국이 여전히 북한과 방위조약을 맺고 있다는 문제가 남습니다.

[김정범 기자]

[ⓒ 매경미디어그룹,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