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쇼] 남북 `핫라인 재개통`…단절과 연결의 반복

최초입력 2018-01-05 13:47:14
최종수정 2018-01-07 11:20:18
북한이 판문점 평화의집 고위급회담 제안을 수락한 5일 판문점으로 향하는 길목인 파주 통일대교를 통해 차량이 드나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북한이 판문점 평화의집 고위급회담 제안을 수락한 5일 판문점으로 향하는 길목인 파주 통일대교를 통해 차량이 드나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6년 2월 이후 끊겼던 판문점 남북 핫라인(직통전화)이 3일 연결되면서 약 23개월 만에 재개통됐다. 그간 남북 간 유일한 연락망인 핫라인이 끊기면서 확성기 방송이나 판문점에서의 육성을 통해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

남북 간 핫라인은 1971년 9월 처음으로 설치됐다. 박주선 국회 부의장이 통일부에 요청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남북 간 핫라인이 단절된 것은 6차례로 도끼만행사건, 개성공단철수, 5·24 대북 제재조치 등 굵직한 사건 직후인 경우가 많았다.
이후 남북 정세에 따라 연결과 단절이 반복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중단 기간이 길었던 순으로 나열했다.



1. 4년(1980년 9월~1984년 9월)

1980년 9월 25일 북측의 일방적인 남북 총리회담 실무접촉 중단 발표 이후 약 4년간 중단됐다. 이후 북측 수재물자 지원과 관련해 적십자 실무접촉을 하면서 수재물자 인도·인수를 계기로 재개통됐다.

1980년 1월 12일 이종옥 북한 총리가 신현확 국무총리에게 총리회담을 전격 제의했다. 이후 총리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2월 26일부터 5월 15일까지 9차례에 걸쳐 연속됐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의 도발이 계속됐다. 1980년 북한 무장간첩 침투사건은 5월 초까지 4개월간 10건이나 됐다.

1980년 3월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침투한 무장공비와 미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는가 하면 같은 달 25일 무장간첩선 1척이 포항만으로 침투하다가 해군에 의해 침몰하여 무장간첩 8명이 사망했다. 북한의 양면작전에 총리회담이 열리지 않았음은 물론 핫라인까지 끊겨 버렸다.



2. 3년5개월(1976년 8월~1980년 2월)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북측이 일방적으로 핫라인을 단절했다. 이후 3년5개월간 단절 상태가 지속됐다. 남북 총리회담 개최를 위한 제1차 실무대표 접촉(1980년 2월) 재개통에 합의하면서 다시 재개됐다.

도끼만행사건은 1976년 8월 18일 오전 11시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15명의 한미 경비병과 노무자가 남측 초소의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를 자르고 있었는데 북한군이 가지치기를 중단하라고 했다. 미군 장교가 이를 묵살하고 작업을 계속하라고 지시하자 북한군 30여 명이 미군 장교를 집단 구타해 숨지게 했다. 이를 계기로 남북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3. 1년11개월(2016년 2월~2018년 1월)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화물차들이 출경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화물차들이 출경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16년 2월 당시 박근혜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맞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북한은 다음날 개성공단 폐쇄와 남측 인원 전원 추방으로 맞대응했고 동시에 판문점 연락 채널을 끊어버렸다. 북한은 '군 통신선과 판문점 연락 통로 폐쇄'를 발표했다.

이후 23개월간 핫라인이 중단됐고 올해 1월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나타낸 이틀 만에 남북 간 연락채널이 복원됐다.



4. 9개월(2008년 11월~2009년 8월)

2008년 11월 제63차 유엔총회에서 논의된 북한 인권결의안을 한국이 공동 제안했다는 이유로 북한이 직통전화 단절을 발표했다. 2008년 3월 한국은 유엔인권이사회를 통해 "한국 정부는 보편적 가치로 인권의 중요성에 입각해 북한의 인권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국제사회 우려에 대해 북한이 적절한 조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해 10월 30일 제63차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 채택을 목표로 유럽연합, 미국, 일본 등 50여 개국과 함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공동제안국 참여는 단순한 찬반 입장 표명이 아닌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후 북한은 크게 반발하며 핫라인을 끊었다. 하지만 약 9개월이 지난 2009년 8월 북한이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고 이후 남북적십자회담을 계기로 재개됐다.



5. 7개월(2010년 5월~2011년 1월)

2010.4.30일 평택에서 출발한 함선(우측)을 탄 천안함 희생자 유가족들이 인천 백령도 사고해역을 돌아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2010.4.30일 평택에서 출발한 함선(우측)을 탄 천안함 희생자 유가족들이 인천 백령도 사고해역을 돌아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10년 이명박정부 당시 대북 제재를 골자로 하는 5·24조치에 반발한 북한은 판문점 연락 단절을 통보했다. 한국은 당시 북한의 천안함 어뢰 폭침사건에 대응해 5·24 조치를 취했다.

당시 조치는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을 전면 불허 △남북 간 물품의 반출과 반입 등 모든 교역 중단 △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를 제외한 북한 지역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방북 불허 △북한에 대한 신규 투자 불허 △대북지원사업 원칙적 보류 등이었다. 이후 7개월이 지난 북측의 남북당국회담 제의 및 판문점 적십자 통로 재개를 통보했다.



6. 3개월(2013년 3~6월)

2013년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결의 및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반발한 북한은 남북 간 핫라인 단절을 발표했다. 북한은 2013년 3월 진행한 한미 군사훈련(키 리졸브)을 전쟁연습으로 규정하고 "정전협정 효력을 완전히 전면 백지화해버릴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또 전면 백지화로 남북 간 불가침 합의들이 전면 무효화된다고 했다.

북한 외무성 역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가 통과되기 직전 성명을 통해 "(제재결의 채택은) 우리가 이미 선포한 더욱 강력한 2차, 3차 대응 조치들을 더욱 앞당기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불과 3개월여 후 북한은 남북당국 실무접촉을 제의하면서 판문점 연락 통로 재개를 통보했다.

[김정범 기자]

[ⓒ 매경미디어그룹,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