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쇼] 南·北 `스포츠 교류` 이후 분위기 얼마나 지속됐나

[레이더P] 단일팀·공동입장에도 불구하고 2년 못넘겨

최초입력 2018-01-05 17:33:42
최종수정 2018-01-08 17: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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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를 계기로 남북 접촉이 급물살을 타면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가능성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간 북한의 양면전술로 인해 이 같은 남북 체육 교류를 통한 화합 분위기가 이후 실제 남북관계 진전에 도움이 됐는지도 관심사다.

남북 간 주요 스포츠 교류가 무엇이 있었는지, 행사 이후 남북 관계가 또다시 경색되기까지 기간이 얼마나 소요됐는지 따져봤다.



1. 1991년 축구 단일팀…1년9개월

1991년 단일팀으로 경기하는 남한 현정화(오른쪽)와 북한 리분희[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1991년 단일팀으로 경기하는 남한 현정화(오른쪽)와 북한 리분희[사진=연합뉴스]
스포츠를 통한 교류의 가장 극적인 사례는 남북 단일팀 구성을 들 수 있다. 1991년 유일하게 이뤄진 바 있는데 그해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을 꾸렸고, 6월에는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이 참가한 것이다.

단일팀을 꾸린 이후 남북관계는 우호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해 10월 4차 남북고위회담 공동발표를 통해 남과 북은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교류협력 실시 문제에 대해 협의를 진행했다. 또 그해 12월에는 상대방의 체제를 존중하고 한반도에 핵무기가 없어야 한다는데 비핵화 선언을 담은 '남북 사이의 화해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는 등 남북관계에 큰 진전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약 21개월 후인 1993년 3월12일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전격 탈퇴하면서 남북 간 관계가 경색됐다.



2. 2000년 시드니올림픽 공동입장…1년8개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북 공동입장[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북 공동입장[사진=연합뉴스]
남북 단일 입장 및 공동 응원단을 꾸린 적도 있었다. 2000년 9월 시드니올림픽 당시 남북은 최초로 공동입장을 했다. 2000년 6월15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후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발맞춰 그해 시드니에서 열린 하계올림픽 때 남북한 선수단이 개막식에서 최초로 공동입장을 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이다. 이후 2000년 10월 조명록 당시 인민군 정치국장이 워싱턴을 찾았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는 등 북미 간 관계도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불과 2년 후인 2002년 6월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서 벌어진 제2연평해전이 발발하면서 남북관계는 급격히 얼어붙게 됐다. 당시 교전으로 우리 군은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으며, 북한군은 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3.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1개월

2002년 9월 29일 부산아시안게임 개막식에 공동기수 황보성일(한국 남자핸드볼)과 리정희(북한 여자축구)가 흰바탕에 파란 색깔의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2002년 9월 29일 부산아시안게임 개막식에 공동기수 황보성일(한국 남자핸드볼)과 리정희(북한 여자축구)가 흰바탕에 파란 색깔의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02년 6월 제2차 연평해전으로 남북한 간 군사 긴장이 높아졌지만 남북은 이와 별개로 9월 시작된 부산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하는 데 합의했다. 당시 아시안게임에서 남북 공동입장을 했고 280여 명의 북한 여성 응원단이 방문했다. 뿐만 아니라 그해 9월 경의선·동해선 연결 공사를 위한 비무장지대(DMZ) 지뢰제거 작업이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의 동서 지역에서 시작되기도 했다. 경기장 안팎에서 화합의 장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그해 10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고 있지만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남북한 관계가 한순간에 냉각됐다.



4.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8개월

북한 남자 피겨스케이팅 한정인과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이보라가 지난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개회식에 한반도기를 함께 흔들며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북한 남자 피겨스케이팅 한정인과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이보라가 지난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개회식에 한반도기를 함께 흔들며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06년 2월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남북한 선수들이 '코레아(COREA)'라는 이름 아래 한반도기를 흔들면서 함께 입장한 바 있다. 하지만 그해 10월 북한은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당시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우리 과학연구 부문에서는 2006년 10월 9일 지하 핵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며 "과학적 타산과 면밀한 계산에 의해 진행된 이번 핵시험은 방사능 유출과 같은 위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5. 2007년 장춘 동계아시안게임…18개월

2007년 1월 중국 지린성 장춘시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남북은 통일기를 든 두명의 공동기수를 앞세우고 조선의 북과 남의 선수들이 함께 입장했고 이에 관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환영했다. 그해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2008년 7월 관광객이었던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고 음식점·숙박업소·관광버스 업체 등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으면서 민간 교류가 단절되기에 이르렀다. 이듬해인 2009년 북한은 2차 핵실험을 하면서 또다시 남북관계에 물을 뿌렸다. 급속하게 얼어붙은 양국 정세로 인해 이후 남북 간 단일팀이나 공동입장을 볼 수 없게 됐다.



6.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11개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회식 북한 선수단 입장 모습.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회식 북한 선수단 입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4년 9월 열린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폐막식에 북한 실세 3인이 전격 방한해 이목을 끌었다.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 팀이 종합 7위에 오르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당시 북한군 1인자였던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겸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김양건 당 중앙위원회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남한을 찾았고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과 오찬을 함께하며 대화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북한은 2015년 8월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 도발로 군 장병 2명에게 부상을 입히면서 또다시 남북관계는 살얼음판을 걷게 됐다.



7. 2017년 무주 태권도대회…1개월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24일 오후 전북 무주군 태권도원 T1 경기장에서 열린 "2017 무주 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한국-북한 태권도시범단과 기념촬영을 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24일 오후 전북 무주군 태권도원 T1 경기장에서 열린 "2017 무주 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한국-북한 태권도시범단과 기념촬영을 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6월 열린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장웅 북한 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북한의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 당시 장 위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스포츠 교류가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 같냐는 질문에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하고, 나쁘게 말하면 절망적"이라며 "정치·군사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스포츠나 태권도가 어떻게 북남 교류를 주도하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한달만인 2017년 7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잇따라 발사했다. 이후 북한은 수차례 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미국 워싱턴DC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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