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북미정상회담 속내…北은 정상국가 대접 美는 중간선거·재선

최초입력 2018-03-09 15:25:09
최종수정 2018-03-09 16:10:21
대북특사단 방북결과를 설명을 위해 방미중인 정의용 안보실장이 8일 오후 (현지시간) 백악관 트럼트 대통령과 면담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이미지 확대
▲ 대북특사단 방북결과를 설명을 위해 방미중인 정의용 안보실장이 8일 오후 (현지시간) 백악관 트럼트 대통령과 면담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사상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며 북핵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했다. 올들어 공세적인 대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도 직접 만나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시도를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핵 문제 해결을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같은 자신만의 외교 업적으로 만들어 중간 선거 승리와 재선으로 가는 다리를 놓을 첫삽을 떴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 북·미 양측으로부터 성실한 중재자로서 신뢰를 쌓는 성과를 거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은 경제파탄을 막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 서로 '빅딜'을 추구할 만한 이해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은 양측 모두가 리더십을 강화하고 경제·정치적 위기를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 북·미 회담은 김 위원장에게는 제재 완화와 국제사회 연착륙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재선을 가져다 줄 수도 있는 확실한 지렛대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2012년 권력승계 직후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을 지도 방침으로 천명하고 국가 역량을 핵개발에 집중시켰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가 쏟아졌지만 개의치 않고 핵개발에 몰입한 그는 지난해 말 서둘러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며 태세 전환을 예고했다. 이는 중국이 유엔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석탄과 철광석·원유 등 북한의 대표적인 대중국 수출입 품목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도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 사용 가능성이 잇따라 제기되며 한반도 위기설이 확산되며 김 위원장 입장에서 미국과의 대화에 나설 유인이 커졌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장기적 목표를) 핵보유가 아니라 '정상국가'로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결심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핵포기에 합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아내기 위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핵포기와 북·미 국교정상화 등을 맞교환하는 승부를 걸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집권 직후부터 러시아 스캔들과 백악관 내부의 내홍에 시달리며 의회와 언론의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이 먼저 대화를 제의한 것이 자신이 추구해 온 제재와 압박의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선전할 수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 먼저 북한의 대화를 제의했던 것과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자신의 대북정책 성과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미대화에서 북한의 핵폐기 내지는 핵·미사일 위협을 제거한다면 금상첨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제의한 대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타격이 아니라면 결국 대화로 풀어야 하는데 군사행동은 주한 미국인의 안전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 등 난제들도 얽혀 있어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진단이다.

다만 북·미 정상회담과는 별개로 향후 비핵화 검증 과정에서 양측이 뿌리깊은 불신의 벽을 뛰어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2005년 9·19 공동성명 당시에는 검증 대상이 북한 핵시설과 핵물질로 국한됐지만 이제는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더해지며 검증이 훨씬 복잡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수 차례 김 위원장과 말폭탄을 주고받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조심스럽게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김 위원장을 '핵무기를 가진 미치광이'나 '로켓맨' 등으로 지칭하며 비꼬았다. 지난해 8월에는 김 위원장을 겨냥해 "미국을 위협하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북한 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최고지도자 명의의 성명을 내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며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제 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라고 꼬집었다. 양 정상의 설전은 1월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내 책상 위에는 항상 핵 단추가 있다"고 위협한 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나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단추가 있고 작동도 된다"고 맞받으며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한국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통해 트럼프에게 보낸 구두 메시지에서 "가능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며 러브콜을 보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항구적인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김 위원장과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진명 기자/김성훈 기자/강봉진 기자]

[ⓒ 매경미디어그룹,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